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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 4 최 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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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피플신학대학
댓글 0건 조회 4,514회 작성일 22-05-1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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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기독교와 개혁주의 신학

 

학자들 가운데서 가끔 발견되는 우상성은 자신의 신념을 유일한 성경적 견해로 여기며 절대화하는 태도이다. 타성적으로 지금까지 다루어 오던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같은 형식 속에 집어넣어 판단하면서 오히려 자기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자연과 우주의 중심에 두고,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말하면서도 자주 객관적으로 말해서라고 한다. 자신의 것과 다른 신념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역사적 기독교 신자들은 기존의 견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주저한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 상태를 옹호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신학도의 임무는 쟁점들을 명확히 밝히고 공동유산인 신앙고백을 비평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적합한 기준을 제공하며 성경·전통·신앙고백·교리·신학·역사 등 신앙의 내적 외적 요소들을 해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이다. 역사적 기독교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평 작업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기독교 신학자들 가운데도 해석학적 겸손이 결핍된 사람들이 없지 않다.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패러다임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 한다. 신앙과 이성을 구분하고, 기독교의 초기 역사(그리스도의 도성인신, 동정녀 탄생, 대속죽음, 육체부활, 기적 능력 등)절대로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관주의와 상대주의 태도를 가지면서 그것을 절대시한다. ‘선 무당 사람 잡는 식으로 사물을 판단하기도 한다.

지적 폭군이 되지 않으려는 신학도는 자신에게 있을 수 있는 왜곡, 편견, 실수에 대해 비평적이다. 해석학적 활동에서 본문을 자신의 선()이해에 밀어 넣어 꿰맞추는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동시에 타인의 견해를 기꺼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진다. 자신의 선이해를 본문에 비추어보고, 해석학적으로 검토한 결과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교정하려는 선비의 태도를 가진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사물이해는 완전할 수 없다. 해석학적 겸손을 가진 사람은 이성적 진리와 교회의 전통이 제시하는 진리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이성적 진리가 이성 자체의 제한성과 속임수 때문에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간파한다. 이성적 탐구와 발견을 위한 비평적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신학 입장이 다르다고 하여 저 수많은 탁월한 학자들의 이론들을 맛보는 것조차 거절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배우고 담아 본 뒤에 그것을 버리는 자유인의 기개를 가진다. 현대신학의 변화와 흐름을 탐색한다. 현대의 지성인들이 무엇 때문에 고뇌하며 씨름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 배울 것은 주저하지 않고 배운다. 진리탐구의 길을 뚫고 사고의 폭을 넓힌다.유서 깊은 기독교 안에는 여러 갈래의 신학 흐름이 있다. 그 중심에는 개혁주의 정통신학(Reformed Orthodoxy)이라고 하는 신념체계가 있다. 이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최종 표준으로 삼는다. 성경의 관점에서 사물을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성경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신학활동을 하고자 한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신학의 토대로 삼는다. 성경에 충실한 신조, 신앙고백, 교리를 선호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웨스트민스터 대·소교리문답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성경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앙고백서라고 생각한다.

박형룡은 역사적 기독교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기독교가 과학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계시신학(啓示神學)의 본성(本城)을 버리고 자연종교의 막연한 황야로 도피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 신학, 신신학, 현대주의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판한다. 반면에 유서 깊은 기독교를,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술된 말씀과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법칙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초자연적 성경관을 중심축으로 삼는 신학’12이라고 정의한다. 칼빈주의가 이러한 종류의 가장 명확한 신학적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의 기독교신학난제선평(1935)은 정통신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정통신학은 절대적인 인식학적 권위가 오직 천계(天啓)와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에 있는 것이다. 순전히 성경에 따라서 거기 기초하고 거기 부합하는 종교적 의견이면 옳은 의견,’ 곧 정통신앙으로 인정할 것이다. 교회의 교리를 제정함에 있어서 다수인의 권위나 선생의 권위에 따르지 않는바 아니다. 그러나 최고의 권위는 성경이다. 그 의견이 성경과 합하느냐 않느냐를 상고하여 성경에 가장 잘 부합하는 의견을 정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13통신학은 성령의 살아 있는 역사를 강조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시고 사랑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속(redemption)에 능동적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믿음과 칭의와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신앙의 핵심은 예수이다. 그는 만물의 주이며, 유일한 구원자이다. 창조·보존·섭리·통치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은 우주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하시고,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케 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시간의 끝에 심판주로 재림할 것이다. 신앙은 삶 전체와 인격의 문제라고 본다.14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장로교회와 개혁교회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유주의 신학과 신신학(바르트주의)을 수용했다. 역사적 신앙고백서들을 버렸고, 유서 깊은 기독교와 상반되는 새로운 기독교로 거듭났다. 그들이 버린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