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17. 한국기독교 장로회 (기장측). 김 효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뉴피플신학대학 댓글 0건 조회 4,722회 작성일 22-05-03 19:59 List 본문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17) 김 효성 목사 [이 내용들은 기존 교단들 속에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이 깊이 뿌리 내렸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바른 신앙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덕재]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한국의 장로교단들 가운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은 처음부터 자유주의자 김재준 박사를 옹호하면서 세워진 교단으로서 자유주의적이었고 지금도 그 교단과 그 교단의 목회자 양성원인 한신대학교 신학부는 자유주의의 일선에 서 있다. 문익환 목사: 사도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 실존적으로 동참함으로 주의 부활에도 동참한다고 믿었다. . . . 고린도전서 15장의 내용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부활한 몸에 관한 호기심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겨둔다고 해서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으로 믿는 자가 전인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288)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 김동수 목사와 박봉랑 교수는 1973년 부활절 메시지에서 한국 교회가 인간의 영혼불멸 사상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부활은 2천년 전의 골고다의 예수의 부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이곳 한국 땅에서 날마다 사는 부활의 승리에서 영광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하였다.289) 그러나 인간의 영혼불멸 사상을 부정하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의 의미를 무시하고 현재적 부활의 의미만 붙들려고 하는 태도 역시 불신앙에 불과하다. 조향록 목사: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사건적으로 입증하든지 부정하든지 하는 논란은 큰 의미를 거두지 못한다. . . . 문제는 이 사건을 받아들이는 수용 자세에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도 부활 사건은 신앙의 창문을 열고야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기는 하나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요 대상이 된다. 신앙은 그 신앙의 대상이 되는 문제나 사건이 신앙하는 자에게 의미적으로 받아지는 것이다.290) -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만 돌리고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며 인식의 대상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성경적 믿음이 아니다 김경수 목사: 한국신학대학 출신 제주 남부교회 김경수 목사는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3권)을 번역한 후 다음과 같이 썼다: “신학적으로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신학자는 김재준, 칼 바르트, 폴 틸리히라고 할 수 있다. . . .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나의 조직신학 교수는 폴 틸리히의 신봉자였고, 그는 폴 틸리히를 빼 놓으면 신학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틸리히 신학에 빠져 있었다. 내가 폴 틸리히에게 몰두하게 된 것도 그의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폴 틸리히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마음을 빼앗곤 했고 공감을 일으켰다.”291) 1970년, 저자가 재학했던 연세대학교의 교양과목 중 기독교 개론 교재가 폴 틸리히의 긍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계준 역)이라는 책이었다. 그 이단적 자유주의자의 책이 소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대학교의 기독교 개론 교재이었던 것이다! 안병무 박사와 송기득 교수: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원대 은퇴교수인 송기득 교수(조직신학)는 기독교 사상 2001년 1월호에서 안병무(한신대 대학원장, 한국신학연구소 창설, 현존지 발행인)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라 ‘예수교인’이었다고 주장했다.292)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교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삼위일체, 신인양성(神人兩性), 성육신, 대속 등을 믿는 자이다. 그러나 안병무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 곧 민중이 해방되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정치범으로 붙잡혀 십자가 형틀에서 처참하게 죽임당한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투쟁은 패배로 끝났다. 예수는 로마의 침략 세력을 쫓아내지도 못했고 헤롯의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예루살렘 성전 체제를 전복시키지도 못했다. 이리하여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민중해방자로서 예수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면 그가 민중해방운동의 길을 열었고 한 역사적 전거(패라다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송기득 교수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와 역사적 예수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론, 양성론, 육화론[성육신론], 대속론 따위는 그리스도에 관한 중심 교리로서 그 나름의 진리성을 갖는다. 다만 학자들에 따라서 그 해석이 다르기도 하고 또 어떤 교리는 부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실질적인 내용으로 통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한 안병무의 역사적 예수는 삼위일체적 존재, 성육신(成肉身)한 존재, 신인 양성(神人兩性)을 가진 존재 등이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안병무가 '예수는 철저하게 "사람"이었다. 그것도 "보통사람"이었다'고 말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 . . 사실 역사의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처형된 것이 아니라 민중해방운동을 벌이다 그 대가로 십자가 형틀에서 살해된 것이다. 만일 예수의 죽음을 굳이 '대속'이라는 말로 이해하려면 그것은 이스라엘 민중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지배 세력에 대한 민중의 항거를 대신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속론을 펴려면 '민중의 대속론'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대속론에서 대속을 받아야 할 진정한 죄는 구조악에 연원하고 있다. 예수는 죄의 대속자가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죄, 즉 구조악에 대한 항쟁자이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사실로 보아 우리는 역사의 예수의 실상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송기득 교수는 안병무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고 '예수교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전글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18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김 효성 목사 22.05.13 다음글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16 기독교 대한 감리회. 김 효성 2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