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 10. 최 덕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뉴피플신학대학 댓글 0건 조회 4,059회 작성일 22-05-17 05:44 List 본문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근본주의를 거부하거나 폄하하는 사람은 기독교의 중추 도리들을 거부하는 ‘새로운 기독교’ 신자이다. 오번 선언서 사상을 따르지 않고 유서 깊은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신앙해 온 도리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자이다. 자유주의 기독교 추종자들은 역사적 기독교를 따르는 사람들을 ‘극단의 근본주의자’라고 일컫는다.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완고하게 신앙한다는 것이다.종교학이 말하는 근본주의자는 다양한 형태의 신념과 신조를 고백하고 종종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사람이다. 열정, 확고한 의지, 냉정성이 철저하다. 근본주의는 인도 아요다(Ayodya)의 회교 사원을 폭파시킨 힌두교도나 소수 힌두교도를 박해하는 스리랑카의 불교도, 하나님이 아랍인의 땅을 자신들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는 구쉬 에누민(Gush Enumin)의 유대교도, 기독교인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무조건 회교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역설하는 회교도를 가리키는 용어이다.근본주의는 체질상 새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타협과 변화를 거부한다. 이성적 사고를 방해하고 혼란시키며 현대성(Modernity)을 반대한다. 매사에 우물 안 개구리식이다. 기독교권의 극단적인 근본주의자들이나 종교적, 민족적, 정치적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로 만사를 단세포적으로 파악하고, 지적 탐색을 거부한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같은 종파의 종교인들을 다른 종파의 종교인들보다 더 가혹하게 대한다. 같은 종파의 배교자들을 불신자들보다 더 빨리 화형의 불길에 밀어 넣는다. 잊혀진 과거의 지혜를 상기시키지도 못한 채 전통에 연연한다. 기독교계 안에도 극단의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이들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규정하고 현대적인 것을 거부한다. 반(反)지성적 태도를 유지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존스대학교는 전투적 근본주의(Militant Fundamentalism)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말씀보존학회라고 하는 그룹이 극단의 근본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킹제임스판 외의 성경번역본들은 모두 사탄의 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신학계가 광범위하게 수용하고 있는 뉴인터내셔널판(NIV) 성경도 거부한다.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의 틀을 세우는 데 이바지한 박형룡과 박윤선 교수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보급하고 유서 깊은 기독교를 선전하기 위해 투신한 신학자이다. 바울, 어거스틴, 쯔빙글리, 칼빈의 신학, 데오도르 베자, 프랜시스 투레틴, 유럽 칼빈주의자, 미국의 구프린스톤신학, 알렉산더, 핫지, 워필드, 메이첸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연결시켰다. 미국북장로교회가 좌경화 되기 전에 가졌던 개혁주의 신학은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위필드, 찰스 스펄전,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지녔던 신념체계이다. 주기철·한상동·주남선·손양원 목사가 배우고 전수한 칼빈주의이다. 유서 깊은 기독교의 대명사인 개혁주의―칼빈주의는 문화에 대한 관심과 지성적 활동을 환영한다. 새로운 문명을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로 보는 반면에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근본주의는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문화 건설을 위해 힘쓰는 일을 주저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기독교는 복음전파와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세상에 대립하여 오직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태도를 거부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문화명령을 강조한다. 잔술했듯이 개혁주의 기독교는 드라마·댄스·문학·회화·조각·건축·음악 등의 예술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26일제의 식민통치, 광복 직후에 찾아온 동족상잔의 전란, 독재정권, 군사통치, 가난으로 찌든 우리나라는 한국교회에 문화사명을 충분히 감당할 여건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대학교, 병원, 고아원을 세우는 등 사회와 문화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한상동, 주남선, 박윤선 등 여러 사람들이다. 그들을 ‘개혁주의자로 볼 수 없고 근본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더욱이 “극단의 근본주의자,” “극단적 보수주의자”27로 단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쳐 교회를 세웠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여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게 하셨다. 주께서는 이 교회가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엡1:4). 한국교회는 예배당 강대상의 높이를 낮추고, 영상시설을 설치하고, 현대풍의 세련된 예배를 드리는 일에 열중한다. 사회적 신인도 제고와 도덕성 고양과 사회통합에 이바지하는 기독교를 모색한다.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그런 류의 혁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자와 교회와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변화될 때 이루어진다. 성령 안에서 중생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화된 신자는 이웃사랑과 사회변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 한국교회의 개혁 과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 바탕을 둔 신학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의 논의는 메이첸이 유서 깊은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가 같은 뿌리를 가진 상이한 표현이 아니라 다른 뿌리를 가진 서로 다른 종교라고 판단한 것이 그릇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학과 교회와 신자의 신행(信行)의 평가 기준은 정통주의, 자유주의, 진보주의, 보수주의가 아니다. 좌우논리, 흑백논리, 중도논리도 아니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제3의 길’도, 보수주의에 뿌리를 둔 중도파 또는 회색주의도 아니다. 극단의 배타주의와 선민의식, 무조건 타교단과 담을 쌓고 지내는 종파주의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를 동시에 아우른다’는 기치로 진행되는 한국교회의 연합일치운동은 배교적이다.최덕성 교수의 최신작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2005)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전글자유주의 신학 비판 1. 김 효성 22.05.17 다음글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 9 최 덕성 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