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6) 김 효성 목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뉴피플신학대학 댓글 0건 조회 3,425회 작성일 22-09-14 10:15 List 본문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6) 김 효성 목사 [이 내용들은 기존 교단들 속에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이 깊이 뿌리 내렸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바른 신앙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덕재] 11.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가진다. 열한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보편구원론적 경향을 띤다. 보편구원론이란 신자나 불신자나 결국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다는 이단적 사상이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버림을 당하거나 최종적으로 타락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 . .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죄인에게 심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심판의 형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이기를 중단치 않는다.”460)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뜻에 근거해 모든 인간이, 심지어 가장 쓸데없는 자들, 가장 악하고 불쌍한 자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형제이며 하나님이 그의 아버지이심을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이런 생각 위에서 그를 취급해야 한다.”461) 씨 에취 다드(C. H. Dodd)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참으로 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격과 행위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사람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무엇과 같음을 참으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그와의 연합으로 이끄는 길을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떠나 생각하기가 매우 어렵다”.462) “후기 서신들에서 교회는 참으로 보편적이다. 왜냐면 내적 필요에 의해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인류를 포함해야 하며 화목된 우주의 중심을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463) 오스카 쿨만(Oscar Cullmann)도 비슷한 사상을 보인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기독교 보편주의가 있다. . . . 그것은 창조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화목된다. 그것은 종말론적 완성에서 그러하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신 하나님께 복종된다.”464) “하나님의 선택은 모든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향한다.”465) “우리는 모든 구원역사가 처음부터 보편주의적 방향을 띤다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는 노선’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에 이르며, 그 다음에는 전 세계에 이른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도, 구원 역사는 여전히 선택 원리에 따르지만, 이제 선택은 이전보다 더, 단순히 구원을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구원을 세계에 선포하는 특수 사명을 위한 선택을 의미한다. 그것이 모든 구원 역사의 길이다. 즉 보편주의는 그것의 목표이며 집중(concentration, 선택)은 그것의 실현의 수단이다. 여기에서 그 길은 심지어 비기독교 종교들, 더 잘 표현하면, 성경 밖의(extra-biblical) 종교들에게도 열려 있다. 왜냐한면 유대교는 물론 좁은 의미에서 구원 역사에 속하기 때문이다.”466)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죽음에서, 예수는 하나님과의 분리의 결과, 즉 죄에 대한 형벌을 단지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짊어지셨다. 그러나 그를 통해 하나님이 버리신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해 극복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홀로 그리고 소망 없이 죽을 필요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그 내용인 새 생명은 이미 예수 안에서 나타났고 그 자신이 그 새 생명에 장차 참여할 것이라는 소망은 확립되었기 때문이다.”467) “창조적 사랑은 자유에서 나오며 세상에서의 자유의 긍정과 창조로 향한다. 만일 인류의 통일이--그것이 역사의 목적인데--어느 날 실상이 된다면, 그것은 이 사랑에 의해 성취될 것이다.”468) “물론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효과는 이제 그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므로 아무도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이제부터는 아무도 더 이상 홀로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죽음에서 예수의 죽음과 교통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간적 죽음과 예수의 죽음 간의 이 교통은 예수의 죽음의 대리적 의미의 본질적 내용이다.”469) <성경적 반박> 그러나 보편구원론은 명백히 비성경적 이단 사상이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다.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성경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개의 궁극적 상태와 처소가 언급되어 있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하셨다(마 7:13-14). 또 어떤 이가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씀하시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다(눅 13:23-24). 최종적으로 멸망할 자들이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는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또 요한계시록은 회개치 않은 악인들은 장차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을 밝히 증거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20: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이전글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7) 김 효성 목사 22.10.01 다음글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5) 김 효성 목사 22.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