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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5) 김 효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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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피플신학대학
댓글 0건 조회 3,371회 작성일 22-09-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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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의 예 (35) 김 효성 목사

 

[이 내용들은 기존 교단들 속에 얼마나 자유주의 신학이 깊이 뿌리 내렸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바른 신앙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이 덕재]

 

10)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열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한다. 우리가 부활의 역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자유주의자들도 부활을 믿는다고 언어적 유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역사적으로 빈 무덤을 만든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육체적 부활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 동일한 것인데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447)

 

부활은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an occurrence)이다. . . . [그러나] 부활은 도무지 역사상의 사건(an event in history)은 아니다”.44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역사적으로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증거도 없고 어떤 증거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명백하다.”449) “실제로 성경 역사에 결정적 요소들인 창조 이야기와 및 다른 많은 이야기들과 공통적으로, 부활의 역사는 현대 학자들의 사고형식들과 용어로 신화(saga) 혹은 전설로 간주되고 묘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대항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확실히 현대적 의미에서 역사로 생각될 수 있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다.”450)

 

,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이 여전히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한 빈 무덤의 이야기들은 전설들이다”.451) “만일 부활절 사건이 어떤 의미로든 십자가 사건에 첨가된 역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의 발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들의 설교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이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지나간 역사의 사건이 아니다.”452)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의 죽음을 극복한 자의 십자가이다. . . .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실존적 소외의 죽음에 복종시켰던 자의 부활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하나의 추가적인, 의문의 기적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 . . 십자가의 이야기들은 아마 역사적 관찰의 충분한 빛 안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을 가리킬 것이지만, 부활의 이야기들은 그 사건 위에 깊은 신비의 베일을 덮는다.”453) “신들과 반신(半神)들의 부활은 익히 아는 신화적 상징이다. . . .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순간에 . . . 부활 개념이 그리스도에게 적용됨은 거의 불가피하다. 그 상징이 사건이 되었다는 제자들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그리스도로서 메시야가 된 예수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의존하였다.”454)

 

역사적 연구는, [부활 상징에서] 그것의 주위에 있는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이러한 사실적 요소를 찾아내려고 함에 있어서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적 연구는 결코 개연적 대답 이상의 것을 줄 수 없다.”455)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음서들에 보도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들은 바울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들은 강하게 전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그 자체의 역사적 알맹이를 거의 찾을 수 없다.”456)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의 환상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나심들에 대해서 말하는 사건들의 과정을 재구성하는데 있어서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그 제자들 자신과 똑같이 비유적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이 방해를 받지 않았듯이, 우리도 다른 설명의 가능성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러한 언어에 의해 표시된 것의 도움으로 사건들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방해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457)

 

요아킴 예레미야스(Joachim Jeremias)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난은 며칠의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관찰할 수 있는 사건이었던 반면에, 그리스도의 [부활] 현현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아마 여러 해들에 걸쳐서 계속된 다른 종류의 다양한 사건들이었다. 전통은 오직 비교적 후대에만 그리스도의 현현들의 기간을 40일에 한정하였다(1:3).”458) “처음 보기에는, 부활하신 주의 나타나심들이 그 처음 증인들에게 직접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우리의 자료들이 그 사건들로부터 수십 년 동안 떨어져 있고 부활에 대한 기사들이 그 동안 정교화되고 여러 점들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아주 절망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시대의 사고로부터 시작한다면, 하나의 가설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459)

 

<성경적 반박>

 

그러나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에 대해 자세하고 충분한 증거들을 제공한다. 또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보이셨다고 말한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40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1:3).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하다니 성경을 거꾸로 읽는 자들이다!

 

또 그 외에도 성경에서 몇 개의 중요한 구절들을 들어보자. 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은 매우 기본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가 구원받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특히,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하나님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임을 증거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15:3-4). 또 그는 죽은 자의 부활의 근거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든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15:12). 또 그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今生)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말한다(15:19).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승천과 재림의 진리와 관련된다. 만일 우리가 그의 부활의 역사성, 사실성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승천의 역사성과 사실성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또 그의 재림도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